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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스러운 자아의 길(원기98년 3월 3일)
성스러운 자아의 길
 
아마 오늘 대종사님 성령께서 참 기뻐하실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도 마음 든든합니다. 여러분이 대종사님의 심통제자가 되어서 세계를 한 집안, 한 권속을 만들고 인류를 구원하는 큰 일꾼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는 가지 않는 길을 선택해서 가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재색명리를 추구하면서 삽니다. 그런데 우리는 성스러운 세상을 이루기 위해 전무출신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스스로도 행복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행복의 길을 제시해 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길이 결코 쉽지만은 않습니다.
 
내가 스물 두 세 살 때 읽은 책 중 하나가 ‘갈매기의 꿈’입니다. 보통 갈매기는 먹고 살기 위해서 날 다가 일생을 마칩니다. 그런데 조나단, 그 갈매기는 특별히 우리처럼 다른 길을 갑니다. 이 갈매기는 우주를 자유롭게 비상하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모든 정신력을 동원하며 수고를 합니다. 그러다 스승을 만나서 고단수의 비상법을 배우고 결국 자기의 꿈을 실현합니다. 전무출신의 길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명리나 재물 등을 추구하며 사는데 우리는 반대로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능력을 추구합니다.
 
인간에게는 세 가지 심리적인 능력이 있는데
하나는 감성이고, 또 하나는 지성이고, 다른 하나는 실천력 즉 의지력입니다.
즉 지(知) ・ 정(情) ․ 의(意)세 방면으로 인격을 양성해 갑니다.
 
여러분이 감정을 잘 조절하는 공부를 하는 것을 정신수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침에 좌선을 하고, 심고를 올리고, 성가를 부르고 염불과 주문을 외우는 과정이 우리의 감정을 순수한 감정으로 순화하는 정신수양의 길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자기 가족만을 사랑하는 감정으로 삽니다. 그런데 우리 성직자는 그 감정을 인류애로 확장해야 합니다. 동지애로 교단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아가 인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감정을 확장하면서 순수심을 회복하려고 노력해야합니다.
 
여러분은 늘 자기의 감정변화를 읽어
성스러운 감정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유념해야 하고
더불어 성스러운 감정을 가진 사람들을 많이 양성해야 될 책임이 있습니다.
 
다음, 우리들에게는 지적인 욕구가 있습니다.
무엇을 알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는데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나’를 아는 것입니다. 나를 알면 다른 사람을 알 수가 있고 나아가 우주의 원리를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늘 의문을 가지고 깨달음을 얻고자 노력하면 소위 성자와 같은 지혜를 가질 수 있습니다. 배워서 아는 정도로는 성인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정신 작용을 수(受) ․ 상(想) ․ 행(行) ․ 식(識)이라고 합니다.
수(受)는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감촉으로 느낍니다. 이것을 수(受)라고 합니다.
그 다음에 반드시 상(想)을 냅니다. ‘그 때 따뜻했었지, 때리니까 아파’ 이렇게 간단한 생각을 하는 것, 또 누구한테 전화가 오면 목소리를 듣고 얼굴이 떠오릅니다. 그것을 상(想)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왜 그럴까? 언제 봤지? 애를 써서 알려고 하고 기억해내려고 하는 것을 행(行)이라고 합니다.
애써 기억해내서 ‘아, 그래서 그렇구나. 그 사람이 그 때 그랬지’ 이런 생각을 소위 식(識)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쌓여서 지식이 됩니다.
 
그런데 깊이 찾아보고 애를 써서 알아봐도 알 수가 없을 때 의문이 생깁니다. 이것을 의두라고 합니다. 책을 보아도 알 수 없고 누구에게 물어도 이해가 안 되고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던 것이 우연한 기회에 ‘아, 그렇지’ 하는 깨달음이 옵니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나를 확실히 알고 이 우주의 원리를 깨닫게 됩니다. 드디어 성스러운 지각이 열리는 것입니다. 성스러운 지혜가 열린다는 말입니다. 앞에 성(聖)자가 붙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보통 예술가는 감성이 주가 되어서 창작을 합니다. 또 지성이 중심이 되어 학문을 합니다. 그러나 학자가 가지는 학문정도로는 성스럽다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우주의 원리와 자아를 확실히 알고 확인을 할 때 그것을 성스러운 지혜라고 합니다. 우리는 그 단계로까지 올라가기 위해서 갈매기 조나단처럼 열심히 수고를 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의지입니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실천을 못 하는 사람을 의지력이 약하다고 합니다.
대산종사께서는 ‘부도수표’를 말씀하셨습니다. 결심은 하고 행하지 못 할 때 ‘부도수표를 냈다’ 그러셨습니다. 이제 실천력이 중요합니다. 알고 느꼈으면 실천을 해야 합니다. 실천을 못하는 사람처럼 갑갑한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가 유무념 대조를 하고 일기를 기재하는 것도 의지력을 길러서 반드시 실천하기 위함입니다.
 
원불교 전무출신은 세속적인 가치를 버린 사람들입니다. 반드시 내가 이것을 해야겠다고 결심을 하는 동시에 버리고 취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공자님은 ‘용단을 내야 된다’는 표현을 하셨습니다. 아무리 감성이 좋고 지성이 좋아도 그것을 실천하는 능력이 없는 사람이 많습니다. 여러분은 원불교적 가치를 스스로 실천해서 성스러운 자아를 완성하는 의지력 강한 인물들이 되어주기를 부탁합니다.
 
끊임없이 지 ․ 정 ․ 의 삼방면으로 노력하여 성스러운 자아를 완성하고 완성된 자아를 확충시켜 인류를 구원하는 것이 우리들의 일입니다. 다시 말해 대종사께서 말씀하신 수양력, 연구력, 취사력, 이 삼대력을 기르면 성스러운 자아로 변화될 것입니다. 성스러운 자아가 완성되도록 까지 정진하여 교단을 크게 이끌어가는 도인들이 되기를 축원하면서 마칩니다.
 
<98년 3월 3일 신학기를 맞이한 영산⦁익산 예비교무들에게 내린 법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