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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하면 새해 법장사와 법공부가 더 잘 될까 (인산 조정중 원로교무)

원불교신문[1644호] 2013년 01월 04일 (금)

 

 

새 시간, 새 마음, 새 천지가 또 한 번 열렸습니다

불가에서 말하는 시간은 무시(無時)와 함께하는 시간이며, 마음은 무생(無生)과 함께하는 마음이며, 천지는 무유(無有)와 함께하는 천지를 뜻합니다.

올 새해를 맞이하여 우리는 지낸 일은 깨끗이 비우고 두 맘 없이 버립시다. 새해에 당연히 성취할 공부와 사업의 원력을 거듭 세우고, 뭉치고 행동화 합시다. 우리 함께 할 교단100년성업을 더욱 준비하며, 각자가 홀로 해야 할 자신성업봉찬을 게을리 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 한 길로 진급하기를 바랍니다.

어찌하면 법장사와 법공부가 더 잘 될까? 이 길을 터야만 합니다

기도 정성이 지극하면 허공법계에서 내리는 불을 받는다는 수행담이 있는데, 대종사께서 내려주신 법을 받들게 된 우리 모두는 가슴 설레는 큰 숙제를 안고 있습니다. "어찌하면 법장사와 법공부가 더 잘 될까?" 끊임없이 내가 나에게 묻고 있는 이 절박한 숙제, 이 거룩한 숙제를 출가는 물론, 재가와 함께 그 벽을 허물고 풀어야 합니다. 올해의 새 광명, 새 기운, 새 천지는 오롯이 여기에 뜻이 있습니다.

나는 노고(老苦)를 달게 이겨내며 오늘에 이르도록 공들여 온 모든 분야를 하나하나 결실을 맺어가는 홍복을 누리매 이같이 기쁠 수 없다는 감상을 갖습니다. 이는 사은님께 기도를 잘한 은덕으로 믿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법장사와 법공부도 먼저 기도를 잘 하여 서원력(誓願力)을 높이면 성공 확률은 무한정 높아진다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기도하며 정신력을 뭉쳐서 응집력을 토해 낼 때, 좋은 건강, 좋은 공덕, 좋은 공부 길이 열린다고 생각합니다.

사은님의 절대은을 깨닫고 믿으며 수시로 기도하는 기초신앙부터 세웁시다

진정한 필요에 의하여 수시로 기도할 수 있는 기초신앙의 체(體)가 세워진 후에 진리 공부와 마음공부로 거듭 나는 것이 종교인의 참된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대종경〉 인과품 16장에, "모든 이에게 경전을 가르치고 선을 장려하는 것이 급한 것이 아니라 먼저 생멸 없는 진리와 인과 보응되는 이치를 깨닫게 하는 것이 가장 급한 일이니라"하신 바와 같이 우리 종교인은 가장 먼저 신앙 길을 바로 세워야 하며, 우리 원불교인은 일원상 신앙 길과 사은 신앙 길을 가장 먼저 선명하게 세워야 합니다.

〈정전〉 수행편 심고와 기도의 장에 "우리는 자신할만한 법신불사은의 은혜와 위력을 알았으니 이 원만한 사은 신앙의 근원을 삼고"라고 하신 본의를 깊이 명심해야 합니다. 법신불사은의 은혜는 전체 은이시며, 전체은(全體恩)은 곧 절대은(絶對恩)이십니다.

저는 오래 전에 영산선학대학교 총학생회 특강 시간에 일원상의 체성 자리를 설명하면서 그 자리에는 "은혜도 부처도 없고 공한 것"이라고 말한 일이 있습니다. 그 후 한분 원로교무님으로부터 값진 충고를 들었습니다. "인산, 자네는 논리에 맞지 않는 말을 즐겨 쓰지 말게, 일원상 체성 자리에 아무것도 없다면 어떻게 사은의 은혜가 나올 수 있겠는가?" 나는 오랫동안 이 충격파를 소화하지 못했습니다. 우선 성리를 말하면서 논리를 앞세우는 것이 몹시 못마땅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좌선 시간 입선 중에 사유 전환의 큰 알음알이가 터졌습니다.

그것은 바로 법신불사은의 은(恩)은 천지·부모·동포·법률 등의 상대적 은혜가 아니요 이를 통합한 전체은이며 언어도단의 절대은인 것을 간파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법신불사은이시여!" 할 때 연상되는 신앙의 대상은 천지·부모·동포·법률이 아닌 바로 법신불일원상인 것입니다.

원산 서대원 대봉도의 대종사 법설 수기 11항 12항에 보면 "천지가 일원보다 소(小)도 아니요, 일원이 천지보다 대(大)도 아니라 하셨고, 천지 이전에 하나님이나 신이 별존(別存)한 바가 아니요, 천지가 곧 신이요 신이 곧 천지다"하신 바 있습니다. 우리는 사은님에 대한 이해를 더 확실하고 철저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진정한 필요에 의하여 법신불 사은전에 수시로 기도할 수 있는 기초신앙의 체(體)가 세워진 후에 진리 공부와 마음공부로 거듭 나는 것이 종교인의 참된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엿장사로 성공한 선진님의 공력을 법장사로 체 받고 실현합시다

옛 선진님들의 엿장사 실력을 발휘해야 오늘 우리네의 법장사를 잘할 수 있습니다. 엿장사를 잘하려면, 우선 먹는 사람의 입맛에 맞는 엿을 만들어야 합니다. 어린이는 눈에 띠는 색과 달콤한 깨엿을 좋아하고, 젊은이들은 깨물면 바삭하는 소리가 나도록 속이 텅 빈 엿을 좋아합니다. 노인은 노인대로 입천장에 들러붙지 않는 엿을 좋아합니다. 사람마다 선호도가 다르기 때문에 판엿, 가락엿, 방울엿 등을 개발하여 공급하지 않습니까.

어리석은 엿장사는 자기 맘대로 엿을 만들어서 열을 올리며 팔려고 하지만 백번 실패합니다. 법장사도 매한가지입니다. 지혜로운 법장사는 법이 그들의 소망을 따르는 디딤돌이 되어 스스로 일어설 법을 팔고, 법이 그들의 반려가 되어 함께 약진할 맞춤형 법을 팔아야 합니다.

법은 그 사람 특유의 정당한 성취 욕구를 돕는 법이 되어야 합니다. 이미 틀에 짜인 법을 주입하거나 법을 짜집기하여 전달하는 법장사는 결국은 실패합니다. "이 법을 따르라"하는 법장사가 아니고, "네가 지금 성취하고자 하는 일과 공부에 이 법을 활용하라"하는 법장사가 되어야 합니다.

"
지금 성취하고자 하는
일과 공부에
이 법을 활용하라
"
원불교인의 뿌리는 마음공부에 있고, 원불교인의 빛은 용심법에 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나'를 아십니까? 나를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하지만 진정 나를 아시는 분은 매우 희소합니다. 누구나 나이가 들고 질병에 시달리게 되면 벌써 생기가 사라지고 허무감을 느끼게 됩니다.

이러한 사람은 '나'를 모르는 분입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나는 나이가 없고 질병도 없는 신령(神靈)한 나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마음공부만이 이 신령한 나를 깨닫게 합니다.

신령한 나는 항상 극락과 함께 하며, 자유와 함께 하며, 광명과 함께 하며, 자비와 함께 합니다. 원불교에 입문하여 마음공부에 기쁨이 없고 마음공부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면 참 슬픈 일입니다. 당신의 죽음보다도 더 슬픈 일입니다.

〈정전〉, 〈대종경〉 공부를 대충 마치면 원불교가 지향하는 공부 길에 요령이 잡힙니다. 먼저 계문에서 시작하여 솔성요론, 일원상, 사은, 삼학, 성리, 인과, 교단에 이르기까지 진리공부를 합니다. 진리공부에 가늠이 잡히면 마음공부가 진솔하게 시작되지요. 마음공부의 첫 걸음은 좌선입니다.

이내 좌선 공부에 체를 세우면서 선미(禪味)는 선경(仙境)에 달하고, 자연 중 공부는 무시선의 출발로 당연한 발전이 이루어집니다. 이른바 무루(無漏)의 공을 쌓겠다는 의지가 강인해지는 때를 맞는 것입니다. 이 때 감각감상과 심신작용 처리의 점검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이러한 공부과정을 통하여 한 마음 밝히는 공부(通萬法明一心)가 무엇인가를 깨닫게 되고, 마음공부의 진의가 어디에 있는가를 깨닫게 되며, 다시 만법선용(萬法善用)의 행동하는 수도자가 되어 결국 원불교인의 용심법을 갖추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만법선용의 활선법(活禪法)은 원불교인의 심법이 되고, 이 원만한 심법은 원불교인의 빛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