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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암보살
관세암보살

운수 행각을 하던 한 객승이 어느 절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는데 잠잘 시간이 아니었기 때문에 잠시 대웅전 앞에서 산책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동안 산책을 하노라니 대웅전 안에서 주지 스님이 관음기도를 하며 관세음보살을 부르는데 ‘관세암보살 관세암보살’이라고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객승은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확실한 소리를 듣기 위해 귀를 기울였지만 역시 ‘관세암보살’이라고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객승이 조금은 성질이 급한 편이었던지 대웅전의 문을 열고 들어가 기도하는 주지 스님에게 “관세암보살이 아니라 관세음보살입니다.”라고 하며 고쳐 부르라 했습니다. 기도를 하던 스님도 지지 않고 객승에게 “어찌 관세음입니까. 관세암이지요.”라고 대꾸했습니다. 그리하여 두 스님 사이에 우김질이 일어났고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자 날이 밝으면 조실 스님께 여쭈어 결말을 내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지 스님은 잠자리에 들려다 아무래도 자존심 때문에 잠이 오지 않아 호박범벅을 해 가지고 조실 스님을 찾아가 날이 새면 관세암보살이 맞다고 대답해 달라는 부탁을 하고 나왔습니다.

얼마가 지나자 이번에는 객승이 국수를 삶아서 주지 스님이 모르게 조실 스님께 올리며 관세음보살이 맞다고 답해 달라는 부탁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날이 밝자 우김 질을 벌인 두 스님은 조실 스님 앞에 나아가 서로 옳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자, 조실 스님이 이렇게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래, 참 이상도 하지. 내가 호박범벅경을 보니 거기에는 관세암보살이라고 적혀 있고, 국수경을 보니까 관세음이라고 적혀 있더군.”

하고 파안대소를 하며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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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으로는 명판결이 아니라 할지라도 참으로 지혜로운 판결이 아닐 수 없습니다.

특히 ‘기도의 위력은 기도하는 이의 정성 유무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므로 기도하는 대상의 호칭의 옳고 그름에 대해서는 집착하지 말라’는 조실 스님의 큰 가르침이 판결의 이면에 설해져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이것이 아니면 저것’이라고 명확히 단정짓기를 좋아하고 정확히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지혜의 힘이 아직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판단에 많이 집착하며 사는 것 같습니다. 또한 흑백 논리에 의해 사고하는 데 익숙해져 온 사람들은 한계를 짓기를 좋아합니다. 즉 네 것 내 것의 선을 분명히 그어 놓고 내 것에 대해서는 무한한 관심을 가지고 끊임없이 집착하지만 내 것이 아닌 많은 것들에 대해선 차가운 무관심으로 대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우리는 아직 깨치지 못한 중생이기는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온 우주를 다 품을 수 있는 큰마음의 소유자이기도 합니다.

작은 시비에 얽매이면 큰 공부를 이룰 수 없습니다. 진리에 비추어 크게 어긋날 일이 아니면 ‘그렇지, 그럴 수도 있지’하며 좀 더 많은 부분을 수용하고 감쌀 수 있는 큰 보자기 같은 마음을 가진 법우님들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김준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