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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2. 9 충타원 이명륜 교무 설교
오늘은 「사생의 심신작용을 따라 육도로 변화를 시켜…….」이 대목을 공부하겠음.
내가 변화되어야 주위가 변화되는 것임. 변화의 주체는 나임. 아까 괴로움도 즐거움도 내가 지었다는 성가를 불렀는데 여러분에게 깊이 와 닿았으면 좋겠음.
길타원 임윤길 교도의 사례를 말씀드리겠음. 성동교당 김도장교무님의 어머니임. 불교의 공부를 깊이 하신분임. 이분이 소화가 안돼서 병원에 가니 6개월 위암이라는 사형선고를 받고 암자를 전세내서 “하루에 3천배씩 하면서 내가 죽는 날까지 하리라.” 하는 원을 세우고 매일 매일 하는 상황 속에서 온 몸과 마음을 일심을 다해 삼천 배 절을 올리는데 꿈에 한 번도 뵙지도 않은 저 대종사님이 나타나셔서 “모일 모시에 어디로 와라.” 인도해서 가보니까 영정에 꿈에 본 대종사님이 계신 것임. “왜 거기 있느냐?” 그래가지고 이거 예삿일이 아니다 생각하고 익산총부에 있는 상주선원에서 새벽 4시 반부터 저녁 10시까지 공부를 했었음. 오늘같이 어느 강사님께서 일원상서원문 공부를 시켜 주시는데 “무상으로 보면……사생의 심신작용을 따라 육도로 변화를 시켜” 이 대목에서 그 시키는 주인공이 누구냐? 하면서 이 말씀에 번갯불이 확! 머리를 얻어맞는 기운을 느꼈음. 여기에서 엉엉 울면서 내가 왜 이 남편 만나고 대종사님이 왜 이렇게 인도해 주셨던가를 확연히 알겠다. 하시고 “죽는 날 까지 일원상서원문을 10만독 하고 나 데려가게 해 주십시오.” 하고 염원을 올리고 주야로 일원상서원문을 외웠음. 내용을 훤히 알고 외웠음. 울다가 웃다가 외우고 또 외우는데 정말 죽음이 두렵지 않았음. 영혼에는 죽음이 없음을 확실히 알았던 것임.. 그리고 “육도로 변화를 누가 시키는가?”도 확실히 알았음.
그러던 중 어느 날은 일원상서원문이 나의 서원문이 되는 것도 알게 되었음. 그리고 영문(靈門)이 열려서 과거와 미래 생이 훤히 볼 수 있게 되었음. 나중에 일원상서원문 10만 독을 하고 3일 만에 열반에 들었는데 영통하신 분으로 유명함.
일원서원문 306자 중에서 「사생의 심신을 따라 육도로 변화를 시켜…….」 이 대목에서, 그 변화를 누가 시키는 것인가? 우리는 누가 시키는 것 안 좋아 함. 기분 나빠 재수 없다고 까지 함. 여태까지 부모가 남편이 이래라 해서 하고 속병도 들었는데 시키는 주인공을 알았음. 누가 시켜요? 이걸 알았음. 길타원 임윤길 교도님은……. 일원이 시켰어요. 시키는 주인이 일원임.
 
원불교에 오면 일원상이 있음. 우리는 저기다 절을 함. 교도님들. 나를 지배하고 움직이는 주인공은 누구죠? "나"임. 여러분은 마음이 어디에 들었습니까? 마음이 있지요? 마음이 어떻게 있어요? 그 마음이 들어서 나를 움직이고 조종하고 함.
“지난 날 일들을 돌이켜 보니 괴로움도 즐거움도 내가 지은” 내 마음이 주체가 되어서 몸과 같이 움직이면서 괴로움도 즐거움도 짓고 있음.
서자혜님! 내가 이렇게 부르면 이 소리에 응답하고 알아차리는 그것! 있지요?
이것을 靈識(신령스럽게 아는 것)이라고 함. 그 대답하는 그것이 들어서 나를 움직이고 조종하고 그것이 들어서 오늘 여기 오자고 한 것임. 오늘 그 마음이 교당가자 해서 온 것이지 그 마음이 들지 않으면 안 오게 됨.
그것이 들어서 변화를 시키는 것임.
이것을 육신과 떨어지면 영혼이라 하고 몸과 같이 있으면 내 마음이라 함.
갈타원 임윤길 교도님은 일원이 육도로 변화시킴을 확실히 알았음. 그러면 알아듣는 영혼이 마음이 어떻게 생겼느냐? 그 마음을 말로 표현하면 무어냐? 대종사님께서는 그 마음을 이렇게 생겼다 하시고, 여러분은 누구에게 절을 했느냐? 내 주인공에게 내 참마음에게 한 것임. 이렇게 생긴 그리고 이것을 단어로 일원이라 하셨음. 내 마음 알아듣는 그 것을 설명하신 것이 말로 표현하자면 “언어도단의 입정처이요 유무초월의 생사문이라” 하심.
 
이 육신은 만들어진 물질임. 언젠가는 가게 됨. 만들어진 물질임을 갈타원님은 서원문을 통해 아신 것이고 죽음이 없음을 알으신 것임. 이것은 죽지 않음을 서원문을 통해 확신을 하신 것임. 그러니까 자신이 생긴 것임. 서원문이 글이 아니고 당신이 절규하는 정말로 찾고 싶은 서원문이 된 것임. 알아듣는 그것이 일원인데 대종사님께서는 “언어도단의 입정처이요 유무초월의 생사문이다.” 하심. 일생을 통해서 수많은 지식 명예 이루어 놓았다 할지라도 우리 모두가 내 마음 그 자리 내 영혼이 죽어서 어디를 가는지를 모르고 일생을 마친다면 일생을 남의 머슴살이 해주고 남의 밭만 매주는 격이 되는 것임.
우리에게 수많은 재산과 명예 지식을 갖추었다 하여도 그 모든 것을 갖추지 못했다 해도 내 마음이 내가 죽은 후에 이 시간 이후에 내가 어떻게 변화 되는지를 이 마음 그 자리를 꼭 채득하고 가셔야 함.
 
대종사님께서는 일원상서원문 내주시고요, 이렇게 말씀하셨다함. 「"일원은" 을 "마음은" 으로 "우리 어리석은 중생은"을 "나 어리석은 이명륜이는"으로 이렇게 한 번 해봐라 그렇게 외우면 그러면 훨씬 서원문이 네 자신 것이 될 것이다.」 하셨다 함. 일원은 마음, 그 자리는 말로도 글로도 설명할 수 없음. 마음을 마음이라 하면 마음이 아님. 입정처 자리임. 유무초월의 생사문임. 어디에도 걸리고 막힘이 없음. 여기에 영혼불멸의 자리임. “내 마음은 내 육신이 죽었다 살았다.” 에도 걸리고 막힘이 없이 내 마음은 늘 그대로 있다. 는 것임. 맑고 평화롭고 고요하여 죽고 나는 것도 없다하는 그것도 없어서 지혜 광명을 보고 가지고 알아듣는 영식(=眞我)을 꼭 알으셔야 함. 그 진아는 안 죽어요. 나의 진아는 재판도 정확히 함. 나도 안 봐줌. 여우같은 내가 있음. 가아(假我)라 함. 다르게 표현하면 분별심임. 여우같은 나는 자꾸 봐 줄려 함. 일어나기 싫기도 함. 습관적인 나, 거짓말 하고도 안했다 하고, 그러나 진아는 절대 봐주는 바 없음. 나의 재판관은 이 진아임. 나의 재판관은 봐주는 것이 없음. 그대로 재판함.
지난날 일들을 돌이켜 보니 괴로움도 즐거움도 내가 지었음.
 
 
자 천지 부모 동포 법률의 본원자리도 그렇게 생겼음. 내 성품자리만 내가 알아듣는 것만 그런 게 아니고 사생의 본원자리도 그렇게 생겼음. 그래서 천지가 다 재판 하고 있음. 내가 행동하고 말하는 것을 허공법계에 꼭 저장했다가 시절 인연을 따라서 재판하고 있는 것임.
능이성유상하고 능이성 무상하여에서 "능"은 "때가 되면" 임. 선행하고 또한 악행을 저지르고 했더라도 누가 알아주고 알아주지 않는 것이 아니라, 때가 되면 다 나타나는 것임. 변함이 없는 그 자리는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제가 얘기하면 알아듣는 영식은 변함이 없어요. 그런데 분별심을 내면 다르게 알아들을 수 있어요. 그런데 영식 그 자체는 변함이 없는 것임. 이것은 「유상으로 보면 상주불멸로 여여자연하여」에서 설명했음.
 
사생만큼은 심신작용을 따라서 육도로 변화시키는 것인데 내 마음은 시시때때로 변함. 이것은 무상으로 보면 임. 영혼 진아는 변함이 없는데 분별심, 습관에 젖은 나는 상황에 따라 변하게 됨. 그러니까 변화 되어지는 그것이 잘 변해야 하는 것임.
우주의 성주괴공의 변화는 천업임.
그리고 만물은 생로병사로 변화 하는 것을 막을 장사 없음. 봄이 오고 겨울이 가는 것을 막을 장사 없음. 그래서 우주의 성주괴공과 만물의 생로병사는 천업임. 막을 장사가 없다는 것임.
하지만 사생만큼은 여기에 희망 있음. 살도음을 행한 악인이라도 마음한번 돌려 먹으면 불보살이 될 수 있다는 것임.
사생은 생물이 몸을 받아 세상에 태어나는 형태를 태난습화 네 가지로 구분해 놓은 것임. 현실의 사생과 인간의 심리상태로 본 사생이 있음. 인간 스스로가 자유하지 못하고 끌려 다니고 있음. 사생은 자의식을 가진 생명체를 말함. 스스로 의식을 가진 생명체가 사생임. 태란습화로 변하는 자의식(알아듣는 영식, 그것)이 있음. 그 영식이 심신작용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변화를 시킬 수 있음. 그래서 천업도 임의로 할 수 있는 길이 있는 것임. 그 자의식은 지금도 무의식(아뢰아식)에 저장을 하고 있음. 그러다가 이 몸(=물건)은 때가 되면 없어지는데 몸과 입과 마음으로 지은 것이 호리도 틀림이 없이 저장돼 있다가 육신이 없어지면 혼이 내 마음이 안 없어지고 내가 그동안 몸과 입과 마음으로 지었던 것들이 선업과 악업이 그대로 재판관이 되어 재판을 받게 되는데 그 재판관이 일원이고 본원이고 성품이다 하는 것임. 이 몸이 있을 때 이 몸을 가지고 이런 이치를 알았을 때 내가 심신작용을 잘 해야 되는 이유를 이제 아시겠습니까? 내가 나를 변화시키는 것이니까. 내가 나를 좋은 곳으로 내가 원하고 좋은 쪽으로 변화시켜야 하는 것임. 내 육신에서 영혼이 빠져 나갈 때 내가 나를 심판하는데 그 심판을 내가 원하는 쪽으로 가기 위해서 악업은 참회하고 선업은 날로 날로 행하는 공부를 해야 함. 그러니까 이 몸이 굉장히 중요한 것임.
그래서 죽는 날까지 이 몸 관리를 잘 해야 함. 왜 잘해야 하느냐? 이 몸을 가지고 이런 이치를 알고 부처님 하느님 조상님이 재판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지은 그대로 내가 나를 재판하는데 이 몸 가졌을 때 “오늘은 이렇게 살았어도 내일은, 이 시간은 이렇게 살았어도 이 시간 이후를 늘 생각하면서 찰라 찰라로 마음을 잘 챙기고 늘 복을 지으리라.” 이런 마음으로 살아갈 때 하루하루가 변화 돼 가는 것임. 대종사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원불교는 무엇을 가르치는 종교냐를 한마디로 하면 용심법을 마음 사용하는 법을 묻고 가르치고 배운다고 하여라.” 말씀 하셨음.
마음을 어떻게 사용하라 하시느냐?
마음을 돌리라 하심. 어떻게 돌리라고요? 원망생활을 감사생활로 타력생활을 자력생활로 돌리고 배울 줄 모르는 사람을 잘 배우는 사람으로……. 이렇게 돌리라는 것임.
또한, 누구를 변화시키려 말고 내가 변화 되라는 것임.
내 마음이 변화되고 이 몸을 지니고 있으면서 마음의 변화를 주면서 내 업장을 녹이는데 희망을 갖고 수행을 해야 함.
 
대산종사님께서 개교 반백년 기념대회장에서 하신 말씀을 내가 좋아 하는 데 “부처님께서는 5백생을 닦아서 성불했다 하셨지만 나는 5만생이라도 닦아서 그 자리를 알란다." 그렇게 말씀하셨음. 이 말씀은 대산종사님은 알고 계시지만 우리들에게 던진 메시지임. 이 육신이 잘 변하고 내 영혼은 죽음이 없다는 것을 늘 깨치고 또 깨쳤을 때 반드시 천업을 임의로 하고 생사를 자유 했을 때 행복자가 되는 것임.
내 영혼에 죽음은 없음을 알고, 행복을 찾는 열쇠가 내 마음임을 알아서 분별심에 속지 말고 여우같은 나에 속지 말고 내 재판관은 나임을 분명히 알아서, 열심히 나를 찾고 닦아 나가자는 말씀을 드리면서 마치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