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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기 99년 1월 26일 충타원 이명륜 교무 설교
우리 우연아 교도님. 수많은 경계 속에서 연륜이 그렇게 많지 않은데 내공을 쌓아서 마음의 흐름을 중심을 가지고 살펴보고 경계 속에서 대조하면서 혹여 라도 공부길 잘못하고 있는지에 대한 스스로의 의심을 걸어보면서 공부하는 우연아 교도님 너무 아름다웠음. 값진 보배가 바로 젊은 여자 2단에서 꽃을 피우고 있음. 우연아 교도님 더 큰 경계 속에서 모든 공부길에 꽃피우기를 기대함.
 
남원교당에서 양산종사님이 교무로 있었던 시절에 김진권 교도의 신앙담 내용이 일원상서원문과 관련 있어서 소개하고자함.
김진권 교도는 수원의 친타원 김봉식 교무님의 친 오빠임. 세수 95세 되시는 어른임. 이 분이 남원 광한루 부근에서 조그만 잡화점 경영하고 있었음. 신발도 취급하고 신발을 도매로 구입하기 위해 여수로 기차타고 드나들던 시절이었음. 그런데 여수에서 신발 도매위해 시장 보던 중에 당시에 여수에서 발생했던 여순사건에 연루되어 잡혀가게 되었음. 많은 사람들이 붙잡혀 산속으로 끌려가게 되었는데, 큰 구덩이에 한 줄로 늘어서 세워놓고 총으로 쏘아 떨어지면 묻어 버렸다함. 만성리 해수욕장 가기 전에 여기에서 그런 상황에 김진권 교도님은 그 마지막 순간에 대종사님을 생각하셨음. 생각하면서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일원상서원문을 절실하게 외웠다함. 다른 사람들은 눈물 콧물 흘리면서 공포감에 떠는 순간에 그 분은 마음의 요란함이 일어남이 없이 총소리도 무섭지도 않았음. 일원상서원문을 암송할수록 마음에 솟아오르는 무언가가 있었음. 앞에서는 죽어 가는데 본인은 살 것 같았다함. 지극정성으로 독경을 하자 인민군이 오더니 당신은 남과 다르게 얼굴이 편안하고 차분해 보여 그래서 물었음. 뭐라 중얼중얼하느냐? “저는 원불교의 주문을 외우고 있습니다.” 말할 때 떨리지도 않았음. “나는 모르지만 당신 얼굴 표정을 보니 죄 짓지 않고 산 것 같소. 저리 가시오.” 그리고 끌어내고 나머지는 총으로 쏴 버렸음.
이 분이 어떻게 왜 신심이 났느냐? 양산 김중묵 교무님이 교리강습 때 대산종사님께서 “원불교 정전 다 불타 없어져도 일원상서원문만 있으면 세상에 평화가 올 것이다.”라는 말씀 뜻 알아 가면서 매력 있고, 그리고 나를 알았음. 내가 왜 자식 낳고 아내를 만나고 이를 통해서 그 뒤로부터는 뜻 새기면서 절절하게 외웠다함. 마지막 그 순간에도 위력을 얻도록 까지 서원함으로 외움.
믿음은 만사를 이루는 데 원동력이라 했는데 모르고 믿으면 미신이고 무조건 믿으면 맹신인데 뜻 알고 진리를 알고 이치를 알고 믿어야 함.
우리 교도님들 우주의 75억 인류중의 중심은 누구일까요? "김법조 = 나" 맞습니다. 세상의 중심은 “나” 임. 여러분 경험해 보셨을 것임. 사진 찍고 나면 누구부터 봅니까? 순서가 있음. 나 보고 남편 보고 자식보고 함. 나 임 우주의 중심임. 나의 중심은 무엇일까요? 마음임.
지옥은 있습니까?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믿어 천당 가야지! 지옥 정말 있는가? “없다.”라는 결론임.
이 집 있지요? 꼭 있는가? 원래부터 있는가? 이 집 지은 지 17년 됐는데 원래는 없었음. 만들어 놓은 것임. 천당과 지옥도 만들어 놓았음. 인간들이 세상을 평화롭게 하기위해 만들어진 것임.
내 육체 원래부터 있었습니까? 없었어요. 이 육신은 만들어진 것임. 세상에 지난 화요일에 도성님 장인어른 초상 치르고 염하면서 염하고 나오는데 새벽 4시 일어난 저는 배고프다 밥 달라는 거예요. 화장막에서는 목이 말라 물마시고 싶다고 물 달라는 것임.
이 일해 존영은 화장해서 다 지수화풍으로 흩어진 이 육신, 원래는 없었고 만들어진 이 육신이 우리는 이것이 영원하기를 바라고 있음. 원래 없으니 이 육신의 죽음도 없음. 단지 모여졌다 흩어질 뿐임.
나의 중심은 마음임. 육신이 아님. 얼마 안 있으면 고향 감. 우리 마음에는 인간이 고향에서 사는 사람과 타향에서 사는 사람이 있음. "고향이 그리워도 못가는 신세 꿈에 본 내 고향이 마냥 그리워," 우리는 다르게 불러야 함.
내가 가고 싶은 이 고향을 내가 불러야 함. 빚만 지고 타향에서 사는 것임. 우리가 찾는 고향! 마음의 고향! 업장이 두터워 분별심에 쌓여서 못가는 그 자리에 가야 자유를 누릴 수 있음. 그리워하면서 고향 찾아야 함. 그 고향을 대산종사님께서는 큰 집이라 하셨음. 이 육신은 작은집임. 나의 분별심 일어나는 작은집임.
우리가 말하는 이 고향은 마음의 고향이고 우리는 그 자리를 찾아야 함. 대종사님은 저 일원으로 표시해 주셨음. 내 고향임. 그리고 말로는 일원이라 하고, 일원상이라 표현하셨음. 오늘도 내 고향에 찾아가고 싶어서, 그곳에는 여의보주와 모든 지위와 보물이 다 들어있음.
우리교도님들 인간의 욕망은 채울 수 없음.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가? 서원으로 채워야 함. 서원은 욕심을 떠난 마음을 쓸 때 채울 수 있음. 마음의 고향 저 일원은 욕심으로 못 찾아감. 분별심 관념, 탐심, 진심, 어리석은 마음으로 찾아갈 수 없음
설 명절에 찾아가고 싶은 눈 감을 때 까지 꼭 찾아가야 할, 우리들의 숙제 저 고향자리는 욕심을 떠나고 탐욕과 성내고 어리석은 마음 떠날 때 찾아갈 수 있음. 둥글고 밝은 빛임. 오늘도 그 마음에 둥글고 밝은 빛의 거울을 어둠의 장막으로 감춰놓고 분별심과 예쁘고 밉고 탐욕심에 가려가지고 살고 있는지? 이자리가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이 신앙이요. 이 자리를 가야겠다는 것이 수행임.
그 자리를 아는데 이를 견성이라 함. 그 자리는 아는데 안 되는 것 있음. 그 자리를 아는 것은 견성임. 가기는 가야 하겠는데 고향에 가야 되는 이것이 양성이요 그 고향에서 살아야 하는데 그것이 솔성임.
 
「일원은 언어도단의 입정처이요 유무초월의 생사문인바」 여기까지 알으시면 됨.
신년하례 부연법문에서 육신의 나이는 아는데 마음의 나이를 몰랐는데 영산에서 그 자리를 찾고 보니 편안해졌다 하심. 마음의 나이가 있을 까요? 몇 살이에요? 진타원님! 이 육신은 거짓임이 증명됨. 우주의 중심이 나임도 증명됨. 그 마음이 저렇게 생겼음을 증명해 주시고 저기다 절하는데 그 마음이 언어도단의 입정처이요 유무초월의 생사문이라 하심.
내가 말하면 알아듣고 있는 그것이 들어서 여기 오자 했음. 알아듣는 그것, 그것이 나를 만들고 그것이 내 운명 사주팔자를 만들고 있음. 이것을 내 육신과 있을 때는 마음이라 하고 떠나면 혼이라 함. 알아듣는 그것의 생김새가 언어도단의 입정처이요 유무초월의 생사문임.
말과 글의 길이 끊어진 입정처자리 정(定)에 든 자리임.
예쁘고 밉고 싫어하고 좋아 하고가 없음. 또 속았네 하면서 참회함. 알아듣는 그것은 둥글고 밝은 그 마음은 언어도단의 입정처임. 어떤 생각도 끊어진 상태에서 유무초월의 생사문임. 유에도 무에도 걸리고 막힘이 없이 송교무와 이 교무에게 유무에 집착해서 경계 따라서 어디든지 왔다 갔다 함. “오늘도 유무에 집착 했어! 또 속았구나!” 하고 알아 차렸음. 내가 더 위라는 상, 성격이 급하니 먼저 성질부터 내고, “또 속았구나!” 했음. 그런데 본래 알아듣는 그것은 저쪽에서 아무리 얘기해도 속지 말아야 함. 솔성해서 사는 사람이 고향에서 사는 사람이 활불이고 부처임. 우리 형열님은? 아내가 똑 쏘면 유무초월의 생사문이 되던가요? 어떻게 공부하셔요? “요새는 덜 부딪힙니다.” 어떻게 하니까 덜 부딪히든가요?
 
“오늘아침에 아내를 밥해서 교당에 보냈습니다.” 박수한번 쳐 드리세요. 이런 경우를 공부가 익어간다고 함. 이제 곧 누런 부처가 되시겠네요. 마음의 고향에서 심력이 있어야 함. 견성은 되는데 양성 솔성이 중요함. 그래야 지지 않음. 지고 나서 바라보는 것도 고향을 찾아갈 수 있는 좋은 것임. 우리는 마음이 유무집착하는 데 입정처가 안되니 그러는 것임. 우리가 입정처를 가야함. 입정처와 생사문은 같은 자리임. 그래서 우리가 108배도 하고 선(禪)도하고 하는 것임. 어제 저도 원스테이를 하면서 108배 하고 선을 50분 했는데 처음에는 마음이 산란해서 안 모아 지더니 나중에 30분 되니 눈물이 흐르면서 망아진아현(忘我眞我現)이 되더라고요. 색(色)이 있어서 뭐라 하면 반응하지만, 자꾸 해서 마음을 맑히는 입정처 자리를 늘 가야 함. 가서 현실경계에 유무초월의 생사문이 되는 것임.
알아듣는 그것은 나인데 본래의 나 입정처인 나 생사문이 나가 되어야 함.
우리 모두는 당신도 부처요 나도 부처라는 것임.
나만 그러느냐? 유무초월의 생사문과 천지부모동포법률의 근본자리도 제불제성의 성품자리도 근본자리도 같다는 것임. 그러니까 지렁이나 나의 본성자리나, 대종사님이나 예수님이나 본성자리는 같다는 것이고, “모두가 한 고향이다.”는 것임. 그 마음의 유무초월의 생사문 자리가 나이가 있어요? 나이는 여기에 의심을 가지라는 것 태어남도 죽음도 없음.
그러면 불안이 없어지는 것임.
그 김진권 교도가 일원상서원문을 일심으로 외우면서 육신은 집을 지었다 흩어지는 것과도 같다는 것을 알고 보니 불안이 없는 편안한 자리가 되었고, 그 모습이 인민군의 눈에 비춰졌던 것이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졌다는 것임.
「능이성 유상하고 능이성 무상하여」
여기에 왜 능자를 붙였느냐? 100℃되면 끓는 것이 능임. 가장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이법임. 이것이 능임. 무이이화 자동적으로 때가 되어 인과에서는 연이라 함. 능이성 능이성 무상은 이것은 나의 두 모습임.
내 마음의 두 모습임. 능이성유상(能以成有常)은 항상 있음. 알아듣는 그것(알아듣는 식(識))은 변하지 않음. 오늘은 이렇게 내일은 저렇게 알아들을 수 있음. 내 마음의 기분 따라서 이러기도 저러기도 하는 그것은 변화임. 능이성유상한 자리는 안변함. 이 거울에 예쁜 사람 오면 예쁘게 미운 사람 오면 밉게 그렇게 비치듯이 비치도록 하는 그 성격은 안변해, 그런데 거울은 그대로 비추는데 이것이 능이성 무상(能以成無常)임. 변하는 것을 그대로 비춰주는 것임. 우리교도회장님의 마음이 본심은 안 그래 본심은 나이도 없음. 나이도 없어. 그 본심은 언어도단의 입정처이요 유무초월의 생사문이기 때문임. 본심은 안 그래요. 그래서 내 마음이 본심 거울을 비추게 하는 그 성격은 변함이 없으나, 이 거울에 상황 따라 보여주는 것은 변한다. 능(能)은 ‘때가 되면’을 뜻함.
 
심신작용을 따라 이렇게 나를 만들었구나. 이렇게 김진권교도가 느낀 것임.
 
질량과 에너지는 변함이 없음. 질량불변의 법칙임. 물이 수증기로변해서 인연 따라 머물다가 때가 되면 변하는 이치임. 무상으로 보면 변함이 없는 그것은 내 마음의 알아듣는 그것 육신은 때가 되면 없어짐. 알아듣는 그것은 없어지지 않으므로 천도재를 지내는 것임. 그 혼은 안 없어짐. 그런데 그 혼이 때가되면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를 사생이라 하는데, 사생(四生)만큼은 심신작용을 따라서 “육도(六道)로 변화를 시켜”임. 누가 시키느냐? 일원이 시키는 것임. 그 일원이 나이고, 내 마음임. 알아듣는 그것이 시킨 것임. 그래서 이 모습으로 인연 따라 만난 것은 나이기 때문에 부모가 나를 선택하지 않았고 내가 부모를 선택한 것임. 부모의 연을 만나서 내가 선택한 것임. 그래서 부모님을 원망할 수 없음. 일원이 심신작용을 따라 육도로 변화를 시켰고 그 일원이 나이고 내 마음인 것임.
일원은 불생불멸의 세계, 나는 불생불멸이요 인과보응임. 내 마음의 변하지 않는 그것은 불생불멸이요, 늘 이 생각 저 생각, 좋고 나쁘고 인과응보에 변화를 어떻게 변화하는가에 따라 내 사주팔자를 내가 고치는 것임. 그래서 “운명의 주체 자가 나다.” 이 말이 공식적으로 일원상서원문에 대비하면 딱 맞는 것임. 우리가 “심신작용에 따라 나를 만들고, 만들어 가고 있구나!” “앞으로도 만들어 가고 있구나!”를 공감하면서 마치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