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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기 98. 10. 20) 신은보 교무님 설법
마음공부의 정성
2013. 10. 20
 
□ 충타원님께서 설교 해주실 신은보 교무 소개하심.
교단에서 인재육성으로 원대 교수 요원으로 선발되었음.
고려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 과정 마치고 런던으로 유학 가게 됨.
딸 3형제 출가로 교무된 집안의 둘째 딸임
열심히 영국에 가서 연구해서 교단 인재로 성장하기를 기대함.
 
너무 과한 칭찬에 격하게 감동을 받았음.
저는 신은보입니다.
교육부의 정책적인 과정으로 고대 사회학과 박사 과정을 마치고 런던의 더번대학 연구원으로 유학을 가게 됨.
귀한자리 내주셔서 설교 준비했음. 너무 감사하고 부족함 느꼈으나 나름 충실하게 준비하고자 노력했음.
오늘 말씀드리고자 하는 내용은 마음공부의 정성임.
말씀드리기에 앞서 우리시대가 가지고 있는 모순적인 역설절인 내용 알려드리고자 함.
저는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음. 세상은 예전보다 살기는 편리해졌는데 그것이 행복과 같지 않음, 이것이 참 이상한 역설임. 건물의 높이는 높아졌는데 인격은 안 높아지고 고속도로 넓어졌는데, 우리의 시야는 점점 좁아지고 있음. 소비는 늘었으나 그만큼 더 가난하고 어렵게 사는 분 많아짐. 집안은 넓어졌지만 가족 수는 적어지고, 학력은 높아졌지만 그만큼 인격은 따라가지 못하고 있음. 약도 많으나 약으로 고치지 못하는 어려운 병 많이 생김. 너무 많이 소비하고 적게 웃고 너무 빨리 운전함. 화도 너무 성급하게 나기도 하고 너무 피곤하기도 함. 많이 마시고, 그러나 기도는 드물게 기도하는 경향 있음.
달에는 갔다 왔지만 이웃 만나기 더 어려워졌음. 공기 청정기도 있지만, 나의 영혼은 과연 그만큼 정화되고 있는가? 생각하게 됨. 더 빨라지고 편리해졌지만 양심의 크기도 빠르게 커지고 있는지 의문됨.
행복을 느끼기에는 양심의 크기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음.
 
왜 이렇게 살기가 편리하고 행복해 졌는데 행복해져야 하는데 그만큼 행복해지지 못하는 걸까요?
 
제가 서점에 가는 것 좋아함.
2005년부터 서점에 가면 쌓이던 책이 성공에 관한 저서들이었음.
그러면서 행복 관련 책 등 행복이란 무엇인가 등 행복지침서 등이 늘어서 인문사회학 분야에 행복관련 책들이 증가했음. 그래서 많이 읽었음.
 
이렇게 많아진 것은 그만큼 행복하지 않기 때문임.
아프다는 병원의 검진 받고 약을 먹었을 때 약이 많다는 생각 가졌음. 집에 영양 보조제 두고 먹고 더 좋은 약 늘고 치료제 늘었으니 더 건강해져야 하는데 제 주변에 아픈 사람 많음. 어디든 아픔. 이렇게 아픈 분들이 주위에 많음. 이 부분에 궁금증 들었음. 세상은 정말 편리하고 좋아졌는데 왜? 행복해 하지 않은 걸까?
대종사님께서 고민하셨습니다. 그래서 대답해주셔서 대안을 주셔서 제가 출가했음
우리의 물질문명이 발전한 만큼 정신문명이 따라가지를 못한다.
그래서 파란고해의 일체 생령을 광대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해야 하는데, 물질의 노예 생활을 면하지 못하면 파란고해에서 힘들게 어렵게 생활하게 된다 하심.
그래서 대종사님 내 놓으신 것이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 임.
 
원불교 교도님들은 마음공부를 통해서 정신의 세력을 확장시키자 임. 그만큼 정신의 행복 정도가 커질 것이다 임.
 
오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마음공부를 잘 해야 되는 것은 아는데, 행복전도사가 돼야 한다고 생각 되는데, 오래 가지 못하고 잊어버리고 살고, 순간뿐임. 오늘은 “어떻게 계속 해서 할 수 있을 것인가?” 를 말하고자 함.
그 정성이 무엇인가? 정성심에 대해 얘기 하고자 함.
법문 봉독에서 수행품 5장의 말씀 봉독했음.
 
5장 내용의 핵심은 원리가 무엇이냐? "나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아는가 모르는가에 있다"임. 문득 과거의 일이 떠올랐음. 학부 때 야회를 나가게 됨. 설교, 경강, 공부담 등 하게 되는데, 대각전에 걸어가다가 “내가 왜 야회를 보러 가는 것이지?” 의심이 들었음. 당연히, 무심코 걸어가는 것이었음. 그런데 생각해 보니 그 야회가 나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몰랐음. 무심히 자리를 채우고 왔을 뿐 무엇이 나에게 이득이 되는 줄을 몰랐다는 생각이 들었음.
 
동요 함께 불러 보시겠음.
깊은 산속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맑고 맑은 옹달샘 노가 와서 먹나요.
새벽에 토끼가 눈 비비고 일어나
세수하러 왔다가 물만 먹고 가지요.』
 
이 동요에 지혜가 담겨 있음. 아침마다 세수하러 감. 그 일이 반복되니 왜 호숫가로 가야 되는지를 잊어버림. 나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모르니 물만 먹고 오는 것임. 법회 오시면 어떤 감각과 밝아졌는지를 모르는 것임. 그저 왔다 갔다 임. 이런 일이 반복되면 어떤 관계 있는지 잊어버리고 아무 소득 없이 왔다가 가는 것임
교당내왕시 주의사항에 어떠한 감각 의심이 밝아졌는지 실생활에 활용하기를 주의하라 하심. 어떠한 감각 의심이 들었는지를 대조해서 실생활에 활용하라는 것임.
 
그래야지 지속적으로 계속 마음공부가 이어지기 때문임. 나와 마음공부와 어떤 관계여부에 따라 달라지는 것임. 돈과 명예이면 그에 따라 정성을 들이니 달라지고 마음공부가 생명이면 마음공부에 정성을 들여야 하는 것임.
마음공부를 통해 내 삶이 행복해지고 물질의 노예 생활에서 확실하게 벗어날 수 있다면 정성을 들이게 될 것임. 정성이라 하면 마음이 무겁게 됨.
어렵기 때문임. 쉬운 것을 말씀드리겠음.
 
첫째, 챙김의 연속이 정성임.
챙기는 것이 정성임. 원빈 간사 보니 저의 간사시절이 떠오름. 잊고 살았는데 매우 부족했던 모습이 잡념이었음. 스승님께 꾸중 들으며, 기도 좌선에서도 계속 1분 1초도 잡념 없이 맑은 상태로 있기가 어려웠음. 그래서 나는 출가를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 들었음. 어떻게 하면 잡념을 없앨 수 있을까? 지도 교무님께서 잡념을 놀이꺼리 공부꺼리로 삼아서 공부하라하셨음. 간절히 기도를 드렸음. 그런데 안 없어짐. 얼마 후에 스승님께 문답감정을 받았는데 “아무리 해도 안 없어진다.” 했더니 “잡념이 왜 일어나는 줄 아느냐? 네 마음이 살아 있어서 나는 것이다.” 해주셨음. 그 말씀 듣는 순간 “아! 내 마음이 살아있어서이구나!” 생각이 들었음. 순간순간 마다 일어나는 것이 잡념임. 그것은 마음이 살아있기 때문임.
그런데 마음이 살아있어서 잡념이 나는 것을 그대로 두는 것이 아니라 챙기는 것임. “아! 내 안에서 잡념이 일어나는 구나!” 하고 그 순간 바라보고 챙기는 것의 반복 이것이 정성심임. 대산종사님께서 법훈편에 「정성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심으로 마음을 붙들고 사는 것 아니라 다른 곳으로 가면 챙기고 또 챙김이다. 일심의 지속이 정성이 아니다.」 하셨음. 「성인도 태어나면서부터 죽는 순간까지 일심이 되었다면 나무요 물이다. 상념은 있되 잡념은 없다. 부처님도 잡념이 없음. 無의 상태는 아니고 살아있다면 잡념이 일어나지만 잡념을 챙기는 속도가 번갯불 같이 빠르다」임.
마음을 돌릴 수 있어서 빠르게 챙기고 또 챙겨서 거기에 부처와 중생이 갈라지는 것임. 그런 유무에 따라서 부처와 중생이 달라짐.
“정성은 그 마음 일어날 때 챙김이다.” 그것이 정성임.
넘어져도 챙기고 다시 넘어져도 또 다시 챙김이 정성임
 
두 번째 : 채움의 연속이 정성임.
대학원 학기 시작하면 100일기도를 결재하고 기도에 들어가게 됨. 그런데 아프기도 하고 지방에도 가고 하게 되니 부득이 하루 이틀 빠지게 됨. 그러면 묘하게 안해지고 싶어짐. 퇴굴심이 드는 것임. 이렇게 100일기도 채우기가 어려운 것임. 그때 단비 같은 법문을 찾게 됨. 한 선진님이 천일기도를 결재하고 계속 하는데 사정으로 인해서 이틀을 못하게 되었음. 그러자 대산종사님께 “기도를 빼먹어서 위력이 안 생길 것 같다.” 말씀드림. 대산종사님께서는 “채우면 되지!” 말씀해 주셨음. “이틀 못했으면 다음날 두 번 해라. 그렇게 채워라. 채우고 또 채워 나가면 그것이 정성이고 정성을 들인 만큼 이뤄지는 것이 진리다.” 하심.
제가 대학원에 진학하자 학내에서 편견 있었음. 전공분야도 생소하고 지방 출신이고 다른 종교를 믿고 있음에 생소하게 생각하시는 분들과 영어 스터디를 하게 되었음. 부족하지만 노력 열심히 하며 빠짐없이 가리라 마음먹고, 열심히 갔음. 평소에는 10명 정도 학기 초에 분발심 나서 열심히 하다가 하루 이틀 빠지게 되는 부득이한 경우에는 “채우면 된다는 마음”으로 꾸준하게 열심히 다녔음. 3년 지나고 그 때까지 말 한번 안 걸던 교수님께서 (어느 순간 같이 왔던 구성원들은 빠지게 됨) 3년 지난 다음에야 "한번 읽어 보세요"하고 시킴. 그리고 “신은보 교무님만큼 하면 된다.”고 칭찬까지 하셨음. 지속되고 정성심 가지고 하였더니 “원불교 교무님 원불교인 들은 끈기 있는 분”이라 하심. 원불교를 신앙하는 분이라면 정성스런 사람으로 인식함. 정성이 곧 실력이고 모든 일을 이루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며 정성이 곧 신앙이라는 그런 자부심 갖기 바람.
 
정산종사님 공도편에 「사업은 성공하고 실패하는 원인 있다. 존심과 방심에 있다. 존심은 정성심과 주의심이다. 방심은 모든 일 꺼리고 파괴하는 힘이다.」하셨음. 중간에 하다 말기 때문에, 존심 가졌을 때 어떤 일이든 이룰 수 있는데 그것이 정성임. 끈기 있게 정성심 있게 한다는 것임. 존심은 정성심에 바탕 되어야 함.
 
세 번째, 비움의 연속이 정성이다.
학회 때 외국에 출장 갔음. 발표를 하고 돌아오는데 그냥 오기가 죄송해서 비용을 아껴서 가족들 작은 선물을 면세점에서 샀음. 기쁜 마음으로 어머니 드리고 자매들에게 나눠드리고 하는데 소식이 없었음. 며칠 지나서 아무 소식이 없어 궁금해 졌음. 내가 선물 주었는데 어떻게 됐는가? 연락해보니 “괜찮던데?” 하고 끝임. 비용을 아끼고 아껴서 선물 했다는 마음에 서운한 마음이 들면서 "다시는 안 사줘!" 그 마음이 드는 것이었음.
마음이 비워지지 않으면 정성이 지속될 수 없게 됨. 바라는 마음. 무엇인가 내가 했다는 상이 들어있으면 정성을 들일 수 없게 되는 것임. 「좌선, 경전 많이 읽고 내가 이렇다.」 하면 하나도 안한 것과 같게 됨. 정성심은 마음 비웠을 때 지속될 수 있음. 천지 팔도에 지극히 정성을 들여라. 이것은 응용 무념에서 나옴. 저희 교무님께서 “너 태양이 몇 살인 줄 아니?” 물으셨음. “우주의 덩어리가 몇 만 살? 글쎄요?” 「태양은 한 살이다. 왜? 태양은 자기가 한 바가 없기 때문에 매번 뜨고 매번 그 순간 할 뿐이고 상이 없기 때문에 이렇게 계속 끊임없이 저희를 지켜주고 정성스럽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시비에 초연하고 응용무념한 삶을 살아야 한다.」 하심.
 
내가 이만큼 하고 이렇게 이뤄냈다는 마음 없었을 때 진정한 정성심이 생기는 것임.
분별과 주착심이 나왔을 때 무너져 버리는 것임.
혜가 선사가 달마대사에게 팔을 잘라 바치면서 “도를 달라.”고 간절히 원하나 전혀 움직이지 않았음. “뭘 알고자 왔느냐?” “제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네 마음을 꺼내서 보여 봐라.” “찾아보니 마음이 없습니다.” “그럼 네 마음이 편해졌다.” 이것이 안심 법문임.
분별심이 나오는 순간, 나는 이런 사람이야 하는 순간 이미 내가 여태껏 이뤄놓은 것 무너지게 되어 있음. 그렇다보니 “찾아보니 마음이 없습니다.” 하는 순간 마음이 편해진 것임. 온갖 분별심 내기 이전의 자리를 알려 주신 것임. 비워야 정성심이 생기는 것임. 모든 화두나 의두성리등 내용이 모두 이와 상통한 것임.
 
오늘 정성의 세 가지 얘기 드렸음.
1. 챙김의 연속이 정성이다.
2. 채움의 연속이 정성이다.
3. 비움의 연속이 정성이다.
상이 나오면 못하게 됨.
 
저희들이 이 세상이 편리해지고
과거에는 먹고살기 어려워서 잘 먹는 것에 열중했다면 현재는 잘 사는 것 어떻게 행복하게 살까? 그래서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대종사님께서 광대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해 주신다 하셨음. 물질문명을 정신개벽으로 광대무량한 낙원을 인도하실 수 있다 하심.
정신개벽은 마음공부임. 마음공부는 내 마음의 주인이기 때문임.
열심히 하는데 쉬운 방법 세 가지를 말씀 드렸음.
챙기고 채우고 비우고, 뭔가 나라는 상이 생기면 불행해짐. 왜! 상이 생기면 서운해지기 때문임.
이 세 가지 챙김과 채움, 비움으로 힘을 얻어서 정성으로 희망 얻었던 내용 소개해 드렸음.
 
다함께 합장하고 설명기도
 
은혜로운 법신불 사은이시여
원기 98년 10월 20일 원불교 여수교당 교도님들과 함께,
마음공부의 정성이라는 주제로 세 가지 정성심을 공부해 보았습니다.
정성이라고 하는 것이 너무나 어렵고 무겁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
 
순간마다 나오는 마음을 챙기는 것, 부족한 마음을 채우는 것, 쌓였던 마음을 비우는 것이 바로 정성심임을 깨달았습니다.
 
경산종법사님은 본래 고요하고 본래 지혜롭고 본래 조화로움을 알아서
그 자리를 지키고 그 자리를 시의 적적하게 사용하는 용심법을 터득하여
대각 여래가 된다고 하면 이는 잘 못 깨닫고 잘 못하는 고급 중생에 머물 뿐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저희들 고급 중생이 아니라. 모두 함께 대각여래위가 되어서 대종사님께서 말씀하신 파란고해의 생령들을 광대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할 수 있을 때까지 정성심 있게 공부해 나가겠습니다.
 
정성을 다하면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쉬운 일이 되고,
아무리 쉬운 일이라도 안하려는 사람과
중간에 그만 두는 사람은 다 어려운 일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희 여수교당 교도님들께서는 마음의 정성을 모으셔서
모두 다 쉬운 일이 되고
모두 다 이룰 수 있는 일이 될 수 있도록
법신불 사은이시여!
저희 교도님들의 가정의 평안과
하시는 일들에 호념 하여 주시옵소서!
일심으로 간절히 기원하옵나이다.
이상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위 내용은 원불교 여수교당 정례법회(10월 20일) 신은보 교무님의 설교를 정리한 것임.